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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사울레스와 함께 상전이의 비밀을 파헤치다. (Part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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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사울레스와 함께 상전이의 비밀을 파헤치다. (Part 2)

데카 2021. 1. 27. 23:46

데이비드 사울레스 교수는 1934년 영국에서 태어나 코넬 대학의 한스 베테 교수 밑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한 엘리트이다. 그는 한 층의 막 형태로 응집된 2차원 물질을 연구하던 도중 앞서 말한 모순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입자물리학에서 응집물리학으로 연구 방향을 튼 코스털리츠 교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다. 그리고 바로 이 연구에서 수많은 과학자를 깜짝 놀라게 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이 아이디어를 알아보기에 앞서 위상수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알아보도록 하자. 몇몇은 응집물리학과 상전이를 말하다가 다루기에는 너무 관련성이 없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 사실 당시 물리학자의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오히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위상수학이 물리학과 접하는 것이 사울레스의 이론의 묘미이다. 


위상수학을 설명하기 위해 노벨상 시상 자리에서 사울레스가 사용한 방식을 한번 따라 해보자. 우선 머릿속으로 시나몬 빵, 베이글, 프렛즐을 떠올려보라. 세 가지 종류의 빵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필자는 시나몬 빵의 달콤함, 베이글의 고소함, 프렛즐의 짭짤함처럼 맛을 기준으로 구분해보고 싶다. 하지만 위상 수학자라면 다른 기준으로 이 빵들을 분류할 것이다. 바로 구멍의 개수이다. 즉, 시나몬 빵은 구멍이 없지만, 베이글은 구멍이 1개 있으므로 둘은 서로 구분되는 빵이다. 하지만 도넛과 베이글은 둘 다 구멍이 1개 있으므로 같은 물질이다. 


이제 우리는 구멍의 개수로 물질을 구분하는 새로운 분류체계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이쯤에서 상을 구분 짓는 기준을 상기해보자. 물리학에서 상은 “일정한 물리적 성질을 가지는 균일한 물질계“라고 한다. 즉, 상을 구분 짓기 위해서는 해당 상에서만 드러나는 명확한 특징이 필요한데, 2차원에서 그러한 사례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1960년대 물리학계에서 2차원 상전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이유이다. 하지만 사울레스는 불규칙해 보이는 2차원 평면에서 소용돌이를 찾아낸다. 온도가 높아질수록 소용돌이는 점점 많아지므로 위상수학을 배우기 전의 우리는 이를 상을 구분 짓는 명확한 특징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방금 우리는 구멍의 개수로 물질을 구분해보지 않았는가. 소용돌이는 위상학적으로 구멍과 같이 꼬인 구조이다. 즉, 소용돌이의 개수는, 위상수학이 응집물리학에 접하는 순간 상을 구분 짓는 명확한 특징이 된다. 


그럼 이제 2차원의 고체가 액체가 되는 과정을 따라서 걸어보자. 온도가 올라가는 2차원 평면에 소용돌이가 하나둘 나타난다. 하지만 이 소용돌이들은 쌍을 이루며 묶여 있다. 즉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온도가 더 높아지면, 소용돌이들이 점점 많아지다 상전이가 일어나는 순간 소용돌이들은 분리되어 자유롭게 이동한다. 이제 우리는 2차원 평면에서의 고체가 액체상으로 전이되는 시점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이론은 처음 소개되었을 당시 주목받지 못했지만, 1977년 비숍과 레피의 실험적 연구가 뒷받침하여 현재는 KT 상전이라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사울레스의 연구는 2차원에서의 상전이 현상을 잘 설명해내었다는 의의도 있지만, 이와 연관하여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을 해석했다. 바로 양자홀 효과이다. 양자홀 효과는 1980년 클라우스 폰 클리칭이 처음 학계에 보고한 현상으로, 1985년에 클리칭, 1998년에는 로버트 러플린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쥐여준 당시 물리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양자홀 효과는 2차원의 거대한 판에 저온과 강한 자기장을 주었을 때 홀 비저항이 특정 상수의 정수배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애드윈 홀이 발표한 고전 홀 효과는 홀 전도도가 전하밀도에 의존하고, 연속적인 그래프를 띄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름에 드러나듯 양자화된 그래프를 가지는 양자홀 효과는 굉장히 독특한 현상임을 느낄 수 있다. 앞서 등장한 로버트 러플린을 포함한 많은 과학자가 이 현상을 해석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가장 완벽하게 설명해 낸 이론이 바로 1982년에 사울레스가 자신의 이전 연구를 발전시켜 내놓은 논문이다. 


양자 홀 효과에서 아까와 같은 소용돌이를 찾기 위해서는 전자의 운동을 브릴루앙 공간에서 보아야 한다. 브릴루앙 공간을 쉽게 말하자면 속도 공간으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위치와 속도를 모두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양자 세계에서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 속도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다. 이때 브릴루앙 공간에서 본 전자는 소용돌이 형태를 만들게 되는데, 소용돌이가 생길 때마다 전기전도도 값이 오르기 때문에 불연속적이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자명하게 구멍의 개수는 정수이므로, 전기전도도 값이 정수 계수로 오르는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울레스의 연구는 현재 새로운 위상 물질의 개발과 전기소자가 접목되어 양자 컴퓨터 개발에 쓰일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며, 인류의 전반적 진보에 크게 기여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필자는 사울레스가 살았던 1980년대를 자료 조사를 통해 늦게나마 만나보며 양자컴퓨터의 가능성보다 더 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울레스의 연구는 한 물리학자를 꿈꾸는 학생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주며, 미래 전자기학과 응집물리학에서는 어떤 연구자가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사울레스가 정립한 위상응집물리학은 물질을 분류하는 전혀 새로운 기준이고, 그 기준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위상수학에 뿌리를 둔다. 앞으로 물리학계를 이끌 인재는 이처럼 새로운 도전에 막힘이 없고, 전혀 새로운 분야를 이론으로 연결 짓는 물리학적 직관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기본기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흥미, 대중의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연구를 진행하는 침착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창조적인 도전 정신이라고 본다. 응집물리학과 통계학 양자물리 전반의 진보는 물론 도전적인 자세를 물리학적 사고와 결합해 위상수학으로 물질을 분류할 수 있게 해준 데이비드 사울레스에게 감사를 표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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